정관채 선생은 이 일을 스스로 “운명이다”고 말한다. 전수관이 있는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 정가마을은 영산강변으로, 예로부터 홍수가 잦은 마을. 장마가 지고 홍수가 나면 살아있는 작물은 쪽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마을 일대에서는 쪽이 주 작물이 됐다. 부모가 3대째 쪽염색을 해왔으나 한국전쟁을 지나고, 1970년대 후반이 되면서 화학염료에 밀려 쪽 염색 전통이 거의 끊겨버린 상태였다.
그는 그러나 목포대학 미술학과 1학년때인 1978년 그야말로 ‘운명처럼’ 쪽을 만난다. 은사(박복규 교수)께서 자신에게 쪽씨를 건넨 것이다. “아마도 저를 통해서 과거에 쪽을 심고 쪽 염색을 했던 전통이 빨리 재현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쪽 염색이 너무 힘들고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 미술 전공자로서 내가 아니면 안되겠다는 소명감이 들더라고요. 이 일을 누군가 하지 않으면 쪽빛 색깔이 영원히 사라지겠다는 어떤 위기의식 같은 게 느껴졌죠.” 그래서 힘들게 쪽염색 일을 해오신 부모들과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오로지 소명감과 책임감으로 50년 가까이 쪽 염색에 천착하고 있다.
쪽염색의 미래를 위하여...
선생은 쪽염색의 세계화를 꿈꾸며 주말마다 후학 양성에 헌신하고 있다. 요즘에는 내국인은 물론 외국에서도 쪽염색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에코산업이 하나의 트렌드로 확산되면서 쪽 염색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매주 주말마다 운영하는 무료 교육에는 두 과정에 모두 40명이 넘는 후학들이 기능을 전수받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금까지 전통을 되살리고 발전시켜 온 것이 제몫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문화양식으로 정착시킬 수 있는 기반을 닦는 일이 중요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염색을 배우고 익혀 새로운 문화로 정착시켜 확산시켜 나가는 일을 해야 하고, 이것이 후학을 양성하는 이유입니다.”
나주 새골은 예전에 목화를 많이 심어 천 짜는 마을이었다. 목화는 고온다습한 지역에서 나는데 이 일대가 적합한 곳이었다. 나주시 다시면 동당리는 무명짜기 기능, 즉 ‘새골나이’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 지역이 무명과 쪽이 만나 쪽염색의 고장이 된 셈이다, 특히 쪽은 천연 모시나 삼베, 한산모시, 비단과 같은 천연 섬유와 궁합이 맞기 때문이다.
정관채 염색장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돼 있는 청바지를 쪽염색한 명품 쪽청바지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천연염색한 쪽청바지는 화학염색한 청바지에 비해 환경오염도 줄이고 건강에도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또 가죽을 쪽염색하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정 염색장 옆에는 함께 생활하며 작업하는 가족이 든든한 동료가 돼 함께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일손을 거들어온 부인 이희자씨는 쪽염색 과정을 모두 마스터해 ‘이수자’가 됐다. 이씨는 천연염색과 함께 바느질 솜씨도 좋아 염색과 바느질을 융합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또 둘째 아들 찬희씨가 전남대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이론적 뒷받침을 하고 있다. 전통 천연염색 옷감에 현대적 디자인을 입혀 대중적인 생활용품을 만드는 새로운 도전도 하고 있다. 현재 ‘우수 이수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