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운’ 자연농업 생태계의 틀을 짜다

지구농부 김영대씨(43)의 ‘맑똥’ 이야기

김영대씨(43)는 대한민국 농부다. 농업기획가이자 혁신가다. 직접 농사도 짓고, 토종 씨앗을 이어가며 농사를 짓는 씨앗농부들의 지속가능한 가치사슬을 형성하기 위해 소비자를 연결하는 유통망 구축에도 나선다. 그는 ‘맑똥’을 추구한다.


‘맑똥’ 김영대씨.


그가 말하는 ‘맑똥’은 ‘맑은 똥’을 말한다. 똥은 단지 인간이 배설하는 것만이 아니다. 인간의 생산과 소비활동에서, 동식물도, 심지어 무기물인 흙도 모두 뭔가를 배설한다. 이 배설물인 ‘똥’이 생태계의 순환과정에 투입돼 다양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기후위기를 생각하면 ‘맑은 똥’의 가치는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래서 그는 농사에 가능한한 인위적 간섭을 배제한다. 농약이나 비료 등 화학 제재 는 금기다. 심지어 논을 갈지도 않는다. 물론 종자는 토종 종자를 사용한다.  


토종 종자, 생물자원 다양성의 보고이자 종자 주권의 보루


김씨는 광주시 북구 한새봉농업생태공원에서 토종 종자로 쌀농사를 짓는다. 토종 종자는 수백년 이상 환경과 생태계에서 적응하고 진화돼 왔다. 우리 입맛에도 맞고, 무엇보다 다양하다. 종자에 따라 각각의 색감과 맛을 보여준다. 대체로 병충해에도 강하다. 그래서 유기농이나 자연농법에는 토종 종자가 적합하다.



토종 종자로 재배한 벼 말리기.

토종 종자를 보존 육성하는 것은 종자 주권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최근 글로벌 종자회사들의 1회성 종자가 대량 보급되고 있다. 그러나 매년 종자를 재생산하고, 마음대로 나누어 쓸 수 있는 종자주권이 글로벌 종자회사가 아니라, 농민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미래 식량자원의 주권 역시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김씨가 여러 토종 종자들로 재배한 현미는 색감과 식감 등이 다채롭다. 색감이 다른 만큼 영양적으로 또는 성분적으로 다양성이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자연농법 … 화학약품 제로, 갈아엎지 않는 농지


자연농법으로 토종종자를 재배하는 논.


그는 농지를 갈아엎지 않는다. 땅을 갈아엎으면 토양이 가두고 있는 탄소나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똥’이 배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씨의 논은 농촌에서 흔히 보는 논과 모습이 사뭇 다르다. 두둑엔 밭과 같이 물을 채우지 않고, 고랑을 넓고 깊게 파 그곳에 물을 댄다. 벼가 그 수분을 충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또한, 농약이나 비료 등 인간이 합성한 화학 제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어떤 간섭도 최대한 삼간다. 


김씨 논 모내기, 재래방식으로 사람들이 밭에 모종을 심듯...

‘작은 정미소’에서 가공한 현미 보급


‘맑똥’ 작은 정미소.

김씨가 추구하는 또 하나의 가치는 지속가능한 자연농업 생태계 구축이다. 이를 위해 그가 택한 것은 ‘작은 정미소’다. 자연농법 농사는 대규모 상업농 형태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소농 규모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소농들은 생산량이 적어 기존 정미소 이용이 불가능하다. 대량 도정이 가능하더라도 가공된 상태로 보관하면 미질 유지가 힘들다. 그래서 택한 대안이 ‘작은 정미소’다.


‘작은 정미소’는 주문에 맞춰 소량씩 정미해 공급하는 방식이다. 그때그때 가공해 온전한 식량을 식탁까지 올린다는 취지다. 쌀은 현미로 가공해 공급한다.

현미를 고집하는 것도 그의 신념이다. 백미는 영양성분의 단지 6%만이 남아 있고 씨눈에 영양 성분의 대부분이 있다. 또 비료나 농약과 같은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해성이 전혀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지탱가능한 자연농업 생태계 구축에 나서다


김씨는 지탱가능한 자연농업 생태계 구축에 몰두한다. 자연농법으로 농사 짓는 농부들도 먹고살고, 자식을 기르고, 농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가치사슬이 필요하다. 그래서 농촌이 아닌 대도시 농사를 택했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가깝게 연결하기 위해서다. 농사도 직접 짓지만, 생산된 농산물이 곧바로 소비자와 연결될 수 있는 가치사슬을 형성하는 코디네이터를 자임하고 있다.


작은 정미소 생산제품.

김씨는 ‘지구농 장터’를 비롯, ‘작은 정미소’와 ‘낭만집밥 밥사부’ 등을 통해 농부와 도시 소비자를 잇는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작은 정미소’는 정기구독 회원제로 운영된다. 주로 5㎏ 이하 소량을 주문받아 그때그때 공급한다.


‘지구농 장터’는 매월 둘째주 토요일 광주극장옆 ‘영화가 흐르는 골목’에서 연다. 씨앗농부들이 생산한 작물과 수공예품을 내놓고 도시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낭만집밥 밥사부’ 역시 매월 한 차례 토종쌀로 지은 밥과 씨앗농부들의 1차 생산물로 밥상을 차려 도시 소비자들에게 맛보인다. 농산물을 판매하기도 한다.


현재 이 모든 행사는 SNS를 통해 주문하거나 예약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왜, 이 일을 하는지?



대학 시절, 보도사진연구회에서 활동하며 대안학교나 귀농인, 이주여성 등을 주제로 사진 촬영을 하다 보니 대안적 삶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대학 졸업 후 잠깐 직장에 몸담았다가 대안적 삶을 찾아 지난 2009년말 한새봉농업생태공원의 한새봉 개구리논 공동경작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기존의 자본주의방식이 아닌 다른 농업생태계를 꿈꾸며 농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책이나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른 방식의 삶에 공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막연하게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던 것을 그냥 행동으로 옮겼을 뿐입니다. 그냥 나의 삶을 나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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