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와 윤두서 등 걸출한 예술가 배출한 조선 예술의 산실

녹우당 : 사대부의 지조와 절개를 담은 원림과 연지 품은 대표적 양반 가옥

압 개예 안ᄀᆡ 것고 뒷 뫼희 ᄒᆡ 비췬다 (앞 포구에 안개 걷히고 뒷산에 해 비친다)
ᄇᆡ ᄠᅥ라 ᄇᆡ ᄠᅥ라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밤믈은 거의 디고 낫믈이 미러 온다 (썰물은 거의 빠지고 밀물이 밀려온다)
지국총(至匊悤) 지국총(至匊悤) 어ᄉᆞ와(於思臥) (지구총 지국총 어여차)
강촌(江村) 온갓 고지 먼 빗치 더옥 됴타 (강촌의 온갖 꽃이 먼 빛으로 더욱 좋다)

고산(孤山) 윤선도(1587-1671)가 남긴 75수에 달하는 시조 작품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어부사시사’ 의 첫 수다. ‘어부사시사’는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별로 각 10수씩으로 구성돼 있다. 무엇보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한문 문학에 심취해 있던 시절에 우리글로 이처럼 멋드러진 시문을 풀어낸 점에서 눈길을 끈다. 

▲ 녹우당 전경.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일대에 자리잡은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이다. 윤선도의 4대 조부인 어초은(漁樵隱) 윤효정(1476-1543)이 현재의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이곳은 덕음산을 배경으로 안채와 사랑채를 중심으로 문간채가 여러 동 있는 호남의 대표적 양반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 고산 윤선도 시비.

특히 녹우당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 섬세하고 미려한 시조들로 국문학상 시조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윤선도와 조선 후기 화단의 선구자로,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겸재 정선(謙齋 鄭歚)과 함께 조선의 ‘3재(三齋)’라 불리는 윤두서(尹斗緖, 1668-1715) 등을 배출한 조선 예술의 명문가로 자리잡게 한 곳이다.

▲ 녹우당 정면에 서 있는  500여년 된 은행나무.

 녹우당 정면에는 500여년 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우람한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이 은행나무는 처음 터를 잡은 어초은 윤효정이 아들의 과거급제를 기념해 심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은행나무를 지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로 들어갈 수 있다.

▲ 사랑채. 제공 국가유산청.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이 펼쳐지는데, 앞면에 사랑채가 위치해 있고, 사랑채 뒤 동쪽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ㄷ’자 형태로 자리해 전체적으로 ‘ㅁ’자 구조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 서남쪽 담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다.

사랑채는 조선 17대 국왕 효종(1649-1659)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에 있던 집을 현종 9년(1668)에 이곳에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고산은 42세가 되던 1628년 별시문과에 장원급제를 하고 이조판서 장유의 천거로 인조의 자손인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됐다. 5년 동안 요직을 거치면서 사부를 겸임했다. 봉림대군은 12세부터 17세까지 고산에게 학문을 배웠다.

효종으로 즉위한 봉림대군은 등극하고 두 해가 지나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에게 벼슬을 내렸다. 병으로 취임하지 않았으나, 왕이 다시 불러 조정에 나아갔으나 이번에는 반대파의 모함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효종은 사부인 고산께서 멀리 해남에 가게 되면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고 왕의 과실을 충고 보좌하기 어렵다 하여 한양에서 가까운 화성(수원)에 집을 지어 주고 살도록 했다고 알려졌다.

▲ 안채. 제공 국가유산청.

집터 뒤로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잡고 있는 풍수지리적으로 명당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 집터 뒤쪽으로는 지난 197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500여년 된 비자나무숲이 자리잡고 있다.  

▲ 어초은 사당. 제공 국가유산청.

연동에 자리잡은 윤효정이 철저하게 실천하고 완성하려 했던 것은 성리학적 세계의 실현이었다. 풍수사상에 기반해 자리잡은 연동의 자연과 원림은 이러한 성리학적 세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으며, 집안의 학문사상 역시 성리학의 실천을 위한 것이었다. 녹우당은 윤효정의 유교적 이상향을 지향하는 세계관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윤효정은 스물여섯살 때인 1501년 성균관 생원에 합격하지만 벼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오직 농업과 자손 교육에 힘쓰며 살아간다. 고기나 잡고 땔나무를 하면서 살겠다는 어초은(漁樵隱 )이라는 호가 도가적 취향을 말해준다.

윤효정은 특히 자손들의 바람직한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도록 성리학의 실천적 사고와 전통 풍수사상에 맞추어 백련지를 꾸미고 원림을 조성했다고 한다. 특히 덕음산을 바라보기 가장 좋은 위치에 ‘심(心)’자 연못을 조성하고 연못에는 백련을 심었다.

안채 뒤 담장 밖에는 어초은 사당과 고산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어초은 사당은 해남윤씨의 중시조인 윤효정을 모신 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1간 반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녹우당이라는 당호의 유래는 여러 가지로 나뉜다. 녹우당이라는 당호를 써 준 이는 조선 후기 실학의 거두인 성호 이익의 형 이서로 알려져 있다. 이서는 공재 윤두서와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이서는 이 집안의 학문과 문화, 예술의 상징적 의미와 공간적 정서를 함축하는 의미를 담아 지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다.

또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는 고택 앞에 서 있는 늙은 은행나무에 바람이 불면 잎이 비처럼 떨어진다고 해 유래한 것으로 말해지기도 했다.

어쨌든 녹우는 보통 4월 20일 전후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 풀과 나무가 푸를 때 내리는 비를 말한다. 푸르다는 것은 사대부의 지조나 절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녹우당은 사계절 푸른 원림이나 사대부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비유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 윤두서 자화상. 제공 국가유산청.

녹우당 일대에는 국보인 윤두서자화상과 보물 ‘산중신곡집’, ‘어부사시사집’ 등 지정 유산과 유물이 다수 보관돼 있다.

윤두서(1668-1715)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정약용의 외증조로 조선 후기 문인이며 화가였다. 표현 형식이나 기법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이는 뛰어난 작품을 다수 남겼다.

1987년 국보로 지정된 윤두서 자화상은 종이에 엷게 채색해 그린 그림. 윗부분을 생략한 탕건을 쓰고 눈은 마치 자신과 대결하듯 앞면을 보고 있으며, 두툼한 입술에 수염을 터럭 한 올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화폭 윗부분에 얼굴을 배치하고, 길게 늘어져 있는 수염이 얼굴을 위로 떠받치는 듯 표현된 독특한 모습을 담고 있다.

▲ 心자 연지.

녹우당으로 들어서는 길목 오른쪽에 정자가 있는 작은 연지가 있다. 길 가운데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오른쪽으로 연못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어초은 윤효정이 조성한 소나무숲에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데, 덕의 기상이 물처럼 내면의 일상생활에 스며들도록 하려는 의도로 만든 곳이라 한다. 연못을 마음 심(心)자로 만들고 백련을 심었다. 맑고 깨끗한 기품과 향기로 심신을 맑게 하고 자연을 닮고 싶은 기원의 뜻이 담겨 있단다.

▲ 心자 연지와 심자의 왼쪽 삐침에 해당하는 도로 위 소나무.

후손들은 최근 도로를 확장하면서 마음 심자의 왼쪽 획에 해당하는 도로 중앙의 소나무를 훼손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 고산 윤선도 박물관.

고산윤선도박물관은 국문학상 시조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고산 윤선도를 비롯해 실용적 학문을 추구하며 화가로서, 문인으로서 뛰어난 예술적 감각으로 많은 그림과 글을 남긴 윤두서 등의 작품들이 다수 보관전시되고 있다.

이곳은 국보 240호인 윤두서자화상, 보물 481호 해남윤씨 가전고화첩, 보물 482호 운고산수적관계문서, 보물 483호 노비문서 등 해남윤씨가 남긴 4천여점의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다.

▲ 입장권 매표소.


현재 입장권 매표소로 운영되고 있는 곳은 원래 서당자리였다. 주변 마을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고 곤궁한 마을 아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기도 했던 서당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서당도 제 기능을 잃고 하면서 지금은 매표소로 운영되고 있다.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은 지난 1968년 12월 19일 사적으로 지정됐다.

독보적인 예술작품과 삶의 여적을 남긴 윤선도와 윤두서 등 위대한 예술가들의 혼을 그대로 담고 있는 녹우당은 후대에게 많은 얘기를 전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마음가짐을 어떻게 닦고, 학문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해야 하며, 세상사를 대하는 사회적 실천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등등을...

우리가 어떤 장소를 찾는 이유는 그 장소가 담고 있는 얘기를 듣고자 함이다. 장소는 그곳에서 삶을 영위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녹우당은 그런 의미에서 한 번쯤 방문해 찬찬히 돌아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윤효정이 추구했던 유교적 세계관, 고산 윤선도가 남긴 ‘어부사시사’ 등 위대한 작품들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삶의 가치를 음미해 보는 것은 분주한 삶의 고단함을 달랠 수 있는 기회가 될 듯하다.

주변에는 근처에 땅끝순례문학관이 있고, 승용차로 2-3분 거리에 닭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는 ‘닭요리촌’이 자리하며, 10분 이내 거리에는 천년고찰 ‘대흥사’가 위치해 가족여행을 즐길 수 있다. 또 200여종의 수국을 감상할 수 있는 민간정원 ‘포레스트’, 달마고도로 잘 알려진 ‘미황사’와 ‘도솔암’ 등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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